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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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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352 0 2020-01-16 16:2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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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윤봉길 의거

 

1931년 겨울 윤봉길은 임시정부의 김구를 찾아가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칠 각오를 호소했다. 1932년 이봉창이 동경에서 일본왕을 폭살하려다 실패했고, 이 해 봄 윤봉길은 야채상으로 가장해 일본군의 정보를 탐지하였다.

4월 26일 한인애국단에 입단해 김구의 주관 하에 이동녕(李東寧)·이시영(李始榮)·조소앙(趙素昻) 등의 협의와 동의 아래 4월 29일 이른바 천장절(天長節) 겸 전승축하기념식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하였다.

식장에 참석해 왕웅(王雄, 본명은 金弘一)이 만들어 폭발시험까지 했던 수류탄을 투척하였다. 이때 상해 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 상해의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다(河端貞次) 등은 즉사하고, 제3함대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郎) 중장,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중장, 주중공사 시게미쓰(重光葵) 등이 중상을 입었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잡혀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 해 11월 18일 일본으로 호송되어 20일 오사카(大阪)위수형무소에 수감, 가나자와(金澤)에서 12월 19일 총살형으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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