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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528 0 2020-01-16 16:55:46본문
[1900년] 이봉창 출생
이봉창은 1900년 8월 10이 서울에서 출생했다. 천도교가 세운 용산문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한학 공부를 하다 1913년 일본인 과자점의 점원으로 들어갔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상점, 기차운전견습소 역부 등을 지내던 중 한일 간의 임금 격차 문제를 겪으며, 항일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계속해서 일본인 밑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갔지만 일제의 침략으로 한민족의 생계가 위협받는다는 생각에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를 다지게 되었다. 1930년 12월 상해의 한국인 거류민단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민단의 간부들은 이봉창의 거동을 수상하게 여겨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뒤 김구가 이봉창을 믿고 한인애국단에 가입시켜, 이봉창의 소신대로 일왕폭살계획을 추진했다.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봉창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인쇄소와 악기점에서 일하며 자금을 모았고, 김구 역시 재미 동포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거사를 준비했다.
자금을 모아 수류탄 2개를 얻은 이봉창은 1932년 1월 8일, 동경 요요키 연병장에서 만주국 괴뢰황제 부의와 관병식을 끝내고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그러나 명중을 시키지 못하고 체포되어 토요다마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같은해 10월 공개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봉창의 거사가 알려지자 중국의 각 신문들은 이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특히 중국 국민당 기관지인 국민일보는 "한국인 이봉창이 일황을 저격했으나 불행히도 명중시키지 못하였다."고 보도하여 중국인의 의사를 대변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4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