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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의사 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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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531 0 2020-01-16 17: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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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이봉창 의사 순국

 

이봉창은 1900년 서울 용산에서 태어났다.

용산문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인 과자점, 상점 점원, 기차운전견습소 역부 등으로 일을 하기도 했으며, 1925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이름을 기노시카 쇼조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봉창은 일본인과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직접 겪고 목격하면서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우리 민족의 생계가 위협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맹세하고 1930년 중국 상해로 갔다. 1931년 한국인 거류민단 사무실을 찾아가 자신이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민단 간부들은 이봉창을 수상하게 여겨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김구가 이봉창의 진심을 알고 자신이 결성한 한인애국단에 가입시켰으며, 일왕 암살 계획을 추진하였다.

약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32년 1월 8일, 동경으로 건너간 이봉창은 일왕 히로히토가 타고 있는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그러나 폭탄은 제대로 터지지 않아 암살 시도는 실패했고, 그 자리에서 체포된 이봉창은 토요다마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 해 10월 사형선고를 받고,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한인애국단과 이봉창의 일왕 암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봉창의 의거는 우리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광복이 된후 고국으로 돌아온 김구는 1946년 일본에서 순국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 유해를 국내로 송환하여 서울 효창원에 안장하고, 국민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현재도 이봉창의 묘는 효창원 삼의사 묘역에 자리하고 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4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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