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대첩 100주년 기념식, '다시, 대한민국! 끝내 이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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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백 년 전 애국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보여준다”

[김병기 기자]

 청산리대첩 전승 100주년 기념식 홍보 이미지
ⓒ 국가보훈처

 
'청산리대첩 전승 제100주년 기념식'이 오는 24일 오전 10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이날 기념식은 '다시, 대한민국! 끝내 이기리라'를 주제로 열리며 (사)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가 주관한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백 년 전 불굴의 정신으로 청산리대첩 승전을 이룬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보여줌으로써, 현재 코로나19 위기를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용기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산리대첩은 우리나라 독립전쟁사 상 가장 크고 빛나는 승리이며, 독립군과 민중들이 힘을 모아 일제에 승리함으로써 일제에 대한의 굳건한 독립의지를 보여준 쾌거로 평가받고 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정부 주요 인사, 독립유공자 유족,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및 회원 등 5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KTV 국민방송을 통해 생중계되고 국가보훈처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온라인 콘텐츠를 게시한다.

기념식은 국방부 의장대의 추모 의식을 시작으로 국민의례, 애국자 제창, 추모 묵념, 특별낭독, 기념사, 축사, 기념공연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보훈처에 따르면 추모 의식 '영원하소서'에서는 국방부 의장대가 청산리대첩의 주역인 정예 독립군의 위용을 표현하고, 의장대의 제식과 도열을 통해 독립 선열들을 추모한다.

청산리대첩을 이끈 김좌진 장군의 증손인 배우 송일국 씨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낭독하고, 주제 영상은 청산리대첩의 시대적 배경, 전투의 전개 과정, 승리의 이유, 역사적 가치와 의의 등 대첩의 전체적인 면모를 당시의 사진과 지도를 활용한 영상과 연출로 표현한다.

이날 기념식은 청산리대첩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창작한 역동적인 공연 '끝내 이기리라'로 마무리된다.
 
 무장 독립운동 역사상 최대의 승리, 청산리대첩을 표현한 ‘청산리전투도’
ⓒ 국가보훈처

 
한편, 청산리대첩은 1920년 6월 삼둔자 전투로 시작된 봉오동 전투에서 대패한 일본군이 훈춘사건을 조작, 대규모의 일본군을 동원하여 독립군을 섬멸하려고 획책하면서 비롯됐다. 이에 김좌진장군의 북로군정서를 비롯한 독립군들은 백두산 방면으로 이동한다.

독립군들이 '청산리골'에 위치하고 있음을 파악한 일본은 독립군을 섬멸하기 위해 군을 이동시켰고, 10월 21일 백운평에서 일본군과 북로군정서가 교전을 시작하면서 청산리대첩이 시작됐다.

김좌진 장군과 북로군정서는 백운평에서 일본군에게 승리한 후 갑산촌으로 이동, 천수평에서는 일본군을 기습하여 대승을 거두었고, 어랑촌에서 일본군과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

어랑촌 전투에는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부대도 동참하여 일본군의 측면을 기습 공격하여 일본군을 패퇴시켰다.

1921년 2월 25일 자 '독립신문' 95호 3면에 실린 '대한군정서보고'에는 "적(일본군)의 사상자 죽은 자 연대장 1인, 대대장 2인, 기타 장교 이하 1,254인, 부상자 장교 이하 200인" 이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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