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의거

본문

[1932년] 이봉창 의거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가 동경 요요키 연병장에서 만주국 괴뢰황제 부의()와 관병식을 끝내고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그러나 명중을 시키지는 못하고 체포되어 토요다마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 사건으로 이누가에 내각이 총사퇴하고 다수의 경호 관련자가 문책당하였다. 그 해 10월 비공개재판에서 전격적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10일 이치가야형무소에서 사형에 처해졌다.

이봉창의 거사가 알려지자 중국의 각 신문들은 이 사실을 대서특필하였다. 특히, 중국 국민당 기관지인 『국민일보』는 “한국인 이봉창이 일황을 저격했으나 불행히도 명중시키지 못하였다.”고 보도하여 모든 중국인의 간절한 의사를 대변하여 주었다.

그러나 이 보도가 나간 후 푸저우에 주둔하던 일본 군대와 경찰이 국민일보사를 습격, 파괴함과 동시에 중국 정부에 엄중 항의하는 등 중·일 관계가 매우 악화되었다. 또한 일본군은 중국인 자객을 산 뒤 일본 일련종의 승려 한 명을 암살하게 하여, 이를 빌미로 제1차상해사변을 일으키는 등 그 파급 양상이 심각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447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