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당 창당

본문

[1930년] 한국독립당 창당

 

1930125, 상해에서 조완구·윤기섭·김구·이유필 등 26명이 결성식을 가지고 한국독립당을 창립하였다.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당의 및 당강으로 채택하여 반일적 민족운동과 무력적 파괴운동을 투쟁방식으로 하는 혁명적 정당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김구의 한인애국단을 중심으로 대일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으나, 19324월 윤봉길의 홍구공원 의거로 안창호가 한국으로 압송된 뒤, 당의 지도력이 무너지고 분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독립당은 조소앙·송병조·차이석 등 10여 명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나가게 되었다.

이후 상해사변과 만주사변 등 일본의 중국 침입이 본격화되자, 조소앙은 당을 이끌고 조선혁명당·한국혁명당 등과 연합하여 좌파 인사들이 발기한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에 참가하였다. 1935년에는 한국민족혁명당에 병합되기도 하였으나, 공산주의 운동을 주목표로 하는 의열단계에 반감을 품은 조소앙은 탈당하여 당을 재건하였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김구의 한국국민당에서 지원을 받아 활동하였다.

1940년 민족진영의 3(한국국민당·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통합이 추진되면서 대표당으로서 김구를 중앙집행위원장으로 하는 한국독립당의 창립을 이룰 수 있었다. 새롭게 창립된 한국독립당은 한국독립운동의 주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집권당 역할도 하게 되었다.

한국독립당은 중일전쟁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함께 충칭으로 이동했다가, 19451123일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환국하여 김구를 중심으로 반탁운동에 앞장섰고, 과도정권 수립을 위한 준비에 착수하였다. 한국독립당은 반탁·좌우합작·단독정부수립 반대 운동 등을 추진하였으나 1949626이 김구가 암살되고, 1950년에는 6·25전쟁으로 당의 주요 인사들이 납북되면서 일시적으로 몰락하기도 하였다.

1962년 김홍일 등이 중심이 되어 당을 재건하기도 하였으나, 당의 힘이 미약하여 명맥을 이어오다가 1970년 야당통합노력에 따라 신민당에 흡수, 합당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113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