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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이동녕 순국
1869년 3월 13일 충청남도 천원에서 태어났다.
1896년에는 독립협회에 가담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였고, YMCA운동, 청년회 활동, 신민회 활동 등 약해져가는 나라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들을 전개하였다.
1910년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이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한국인 자치기관인 경학사를 설립해 교포들의 신분 보장과 독립정신 고취에 앞장섰다. 이후 신흥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소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1919년 2월에는 상해로 건너가 정부 조직을 모색하였고,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4월 13일 임시의정원의 초대 의장으로 선임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탄생을 주선하였다. 그리고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국무총리로 취임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 군무총장, 국무령 등을 맡았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이 되는 중책을 맡기도 했다. 1937년에는 한국국민당의 대표로 대한광복진선을 결속하는 등의 활동을 하던 중 1940년 급성폐렴으로 쓰촨성 치장에서 순국하였다.
일제로부터 광복이 된후 1948년 사회장으로 이동녕의 유해 봉환식을 거행하여 효창원에 안장하였고,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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