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 서거

본문

[1944년] 만해 한용운 서거

 

승려이자 시인이었고 무엇보다 독립운동에 힘썼던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44년 6월 29일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중풍으로 눈을 감았다.

본명이 정옥(貞玉)인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 법호인 만해(萬海)와 법명인 용운(龍雲)으로 더 친숙하다. 충청남도 홍성 출생인 그는 6세 때 서당에 들어가 한학을 배우고, 18세 때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하는 등 일찍이 글과 독립운동에 눈을 뜬 시대의 지성인이었다.

그러나 1896년 동학농민운동의 실패로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온 그는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05년 강원도 인제의 백담사에서 승려가 되었다. 그러던 1910년 한ㆍ일합병의 국치(國恥)를 참지 못하고 중국으로 망명, 독립군군관학교를 방문한 뒤 만주ㆍ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 귀국하여 범어사에 들어가 ‘불교대전(佛敎大典)’을 저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과 불교정신을 널리 펴는 데 힘썼다. 1919년 3ㆍ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명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가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6년 희대의 시집 ‘님의 침묵’을 내놓으며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이듬해 조선일보가 중심이 된 일제하 최대 민족운동 단체인 신간회 발기에 참여, 중앙집행위원 겸 경성지회장으로 활동했다.

한편, 지난해 8월 만해가 ‘님의 침묵’을 탈고하는 등 심신이 지칠 때 마다 찾았던 백담사 소재 강원도 인제에 ‘백담사 만해마을’이 준공돼 운영되고 있다. 조선일보사는 지난해 12월 18일 이곳에 ‘조선불교유신론’ 1913년 초판본, ‘불교대전’ 1914년 초판본 등 만해의 저서 원본들과 관련된 희귀자료 115점을 전달한 바 있다.

 

출처 : 조선닷컴 오늘의 역사 (http://db.chosun.com/history/list.jsp?hm=0629&cmd=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