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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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안중근 출생

 

안중근은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아버지 안태훈 진사와 어머니 조씨 사이의 3남 1년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해외 망명을 결심, 산둥을 거쳐 상해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알고 지내던 프랑스인 신부로부터 교육 등 실력 양성을 통해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충고를 듣고 다음해 귀국하였다. 귀국한 후에는 석탄상회를 경영하기도 했으며, 석탄상회를 정리한 뒤에는 삼흥학교를 설립하고, 돈의학교를 인수해 학교 경영에 전념하였다.

1907년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장이 되면서 반일운동에 나섰다. 같은 해 7월 한일신협약이 체결되자 북간도로 망명하였고,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여 한인청년회 임시사찰이 되었다. 이후 의병을 조직해 2차례 일본군을 공격하여 승리하기도 하였으나, 3차의 회령전투에서는 중과부적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1909년 김기룡·엄인섭·황병길 등 12며의 동지가 모여 단지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오적인 이완용의 암살 제거를 손가락을 잘라 피로써 맹세하고 3년 이내에 성공하지 못하면 자살로 속죄하기로 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도착하자 안중근은 권총을 발사하여 3발을 명중시켰다. 결국 안중근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았고, 3월 26일 오전 10시, 여순감옥의 형장에서 순국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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