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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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1945년 8월 광복과 더불어 북한 지역에서는 소련군의 점령 아래 혁명의 원천지라고 할 수 있는 민족기지 건설작업이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그 첫 작업은 소련군이 북한 지역에 진주하기에 앞서서 구성된 각 도의 건국준비위원회를 해체하고 노동자·농민이 중심이 된 진보적인 인민위원회를 조직하는 작업이었다. 민족주의 진영에서는 이를 거부하였으나 소련군정의 압력에 의하여 결국 인민위원회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어 소련군정은 1945년 10월 8일 ‘북조선 5도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20일 뒤에는 이를 ‘북조선 5도행정국’으로 개편하여 북한에서의 중앙정부 수립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또한 10월 10일 북한 지역의 민주기지화를 추진할 지도핵심체로서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1946년 4월 경부터 북조선공산당으로 개칭)을 발족시켰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 3개국 외상회의에서의 한반도 신탁통치 결정을 둘러싸고 북한에서도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조만식(曺晩植)조선민주당(朝鮮民主黨)을 중심으로 한 우익진영이 반탁운동을 전개한 반면에, 좌익진영은 찬탁운동을 벌일 뿐만 아니라 소련점령군과 함께 우익세력을 탄압하였다.
그 결과 북한에서는 우익진영이 대거 월남하거나 숙청당하여 좌익 세력이 행정기관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46년 2월 8일에는 김일성을 책임자로 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발족되어 민주개혁이라는 명목으로 토지개혁, 중요산업의 국유화 등 일련의 체제개혁 작업을 서둘렀는데, 이는 봉건 및 일제 식민지 잔재의 청산과도 관련이 있었다.
또한 8월 30일에는 북조선공산당조선신민당이 합동하여 대중정당을 표방하는 북조선노동당을 창립하였다. 1946년 말에는 도·시·군 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실시하여 각급 인민회의와 북조선인민회의를 구성함으로써 종전의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서 ‘임시’라는 용어를 없앤 ‘북조선인민위원회’를 발족시켰다. 1947년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유엔총회가 유엔 감시하의 남북한 총선거 실시와 유엔 한국감시위원단의 설치를 제의하자,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정부 수립을 서둘렀다.
1948년 8월 25일에 북한에서는 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흑백투표함 방식으로(남한지역은 간접선거) 실시되어 9월 2일 최고인민회의를 구성하였다. 최고인민회의는 1947년 11월부터 제정에 착수해 온 「헌법」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였고, 9월 9일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이 수립되었다. 소련 점령군은 북한 진주 3년이 되는 1948년 12월 친소적인 정권을 출범시킨 뒤 북한에서 철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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