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학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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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후 중국 침략을 목전에 두고 조선 민족에 대한 압박을 더해갔다. 또한 조선 민족사상을 꺾고 나아가 조선 민족을 말살시키기 위해, 조선어 교육을 단계적으로 폐지하였다. 이처럼 일제의 탄압이 강해지자 사전 편찬을 진행하던 조선어학회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함흥영생고등여학교 학생 박영옥이 기차 안에서 친구들과 한국말로 대화하다가 조선인 경찰관인 야스다에게 발각되어 취조를 받게 된 사건이 벌어졌다. 일본 경찰은 취조 결과 여학생들에게 민족주의를 심어준 사람이 서울에서 사전 편찬을 하고 있는 정태진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같은 해 9월 5일 정태진을 취조하여 조선어학회가 민족주의단체로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같은 해 10월 1일, 이중화, 장지영, 최현배 등 11명을 시작으로 조선어학회에 관련된 사람이 검거되어, 1943년 4월 1일까지 모두 33명이 검거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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