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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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안중근 의거

 

1909년 3월 2일, 안중근은 12명의 동지와 함께 단지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안중근, 엄인섭은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김태훈은 이완용의 암살을 손가락을 잘라 피로써 맹세하고 3년 이내에 성사하지 못하면 자살로 국민에게 속죄하기로 하였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대장대신 코코프체프와 하얼빈에서 회견하기 위해 만주에 오는 것을 알았고, 안중근은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와 저격 계획을 모의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특별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했고, 이토 히로부미와 코코프체프는 약 25분 간 열차 회담을 마치고 열차에서 내렸다.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장교단을 사열하고 환영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안중근이 뛰어나오며 권총을 발사했고, 이토에게 3발을 명중시켰다.

안중근은 러시아 검찰관의 예비 심문에서 한국의용병 참모중장, 나이 31세로 자신을 밝혔다. 거사 동기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사령의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지 안중근 개인의 자격으로 사살한 것이 아님을 밝혔다.

재판 결과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았고, 3월 26일 오전 10시 여순감옥의 형장에서 순국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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